• 최종편집 2022-08-12(금)
 
지역 고유의 향토문화는 고유성과 차별성으로 지역의 문화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용인시 향토문화재는 3호까지 지정돼 있다. 향토민속 제1호는 용인 할미성 대동굿, 2호는 경기향토소리, 3호는 포곡상여놀이로 각각 2016년과 2017년, 지난해 지정됐다. 그러나 일부 향토문화를 지키고 보존해온 인물이나 관리단체는 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은 채 자비를 모아 어렵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는 고령으로 먼저 세상을 등졌다. 본지는 용인의 소중한 향토문화 중 문화재 지정이 시급한 소유자나 단체를 만나보고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 편집자 주

 


[향토문화를 지켜온 사람들] 백암농악 차용성


쩍쩍이 겹가락, 암수탈…백암농악 특색 
보존회 둘로 나뉘며 문화재 지정 '고배'

현존하는 민속예술 가운데 농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농악은 음악과 노래, 춤, 이야기가 어우러진 종합 예술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각 지역별 특색을 갖춘 농악으로 마을 주민을 위로하고 흥을 돋았던 농악이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쇠퇴를 거듭해 아예 자취를 감춰 버린 지역도 많다.  


그러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 전해져 내려온 백암농악은 어려운 시기를 거쳐 현재까지도 활발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백암장의 우시장에서 씨름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사당패들이 들어와 한바탕 놀고 물러나곤 했다. 백중날 동네의 큰 잔치가 열리는 곳에서 풍물을 치고 박첨지놀이 등을 하며 장터의 흥겨움을 더한 것이다. 모내기를 할 때는 농민 전체가 참여하는 대동놀이로, 김매기를 할 때는 소리꾼이 논두렁에서 북치며 선소리를 하면 일꾼들이 후렴을 매기는 김매기 소리를 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문화말살정책으로 사라졌던 백암농악은 해방이 되며 다시 시작됐고 1950~1960년대 초까지 크게 번성했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과 근대화가 진행되며 다시 쇠퇴하기 시작했다. 긴 시간 속에서 번성과 쇠퇴를 반복하면서도 지금까지 백암농악을 지켜오고 있는 이가 차용성(93)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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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 인생 70년 차용성 선생, 용인 백암농악을 전국 최고로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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