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유태평양 씨(19·전북대 한국음악과 2년)는 혼자였다.6월 24일 제28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 입상자를 발표하는 자리.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콩쿠르였기에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은 터였다. 그 시간 어머니와 큰아버지 내외, 작은아버지와 사촌누나는 서울 중구 필동 서울남산국악당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금상에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는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시던 상이에요.’


27일 서울 종로의 카페에서 만난 유 씨는 “꿈만 같다”면서 해맑게 웃다가도 지난해 12월 31일 지병으로 작고한 아버지 유준열 씨를 떠올릴 때마다 목이 잠겼다. 소리꾼이었던 아버지는 사물놀이와 판소리에 반응하는 어린 아들을 소리의 길로 이끌었다. 여섯 살 때 3시간 동안 판소리 ‘흥부가’를 완창해 ‘국악 신동’으로 이름을 떨친 그는 “이제 본격적인 소리꾼의 길로 가는 초입에 들어선 것 같다”고 했다.

“생전에 아버지는 ‘태평양, 너는 꼭 동아국악콩쿠르에서 1등 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어요. 스승인 조통달 선생님께 수상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드렸더니 사모님께서 우시더라고요. ‘너희 아빠가 참 좋아하시겠다’ 그러시면서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고인은 경연 내내 그의 곁에 있었다. 콩쿠르의 지정곡이었던 ‘춘향가’ 중 사위 잘되라고 비는 대목은 고인이 특히 좋아했다. “아버지 생각에 울컥해서 목이 가더라”라는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고인은 아들이 판소리에만 갇히기를 바라지 않았다. 태평양 씨가 어렸을 때 방문한 인도에서 전통 타악기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지나치지 않았다. 고인의 권유로 태평양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프리카 타악을 배우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어머니와 남동생도 함께였다.

“당뇨를 앓고 있던 아버지가 4년간 기러기 생활을 하면서 건강이 더 악화됐던 것 같아요. 합병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남아공의 가족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하셨대요. 뒤늦게 소식을 접한 어머니가 당장 짐 싸서 귀국하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노발대발하시면서 ‘그러라고 남아공 보낸 것 아니다. 회복되면 내가 가겠다’고 하셨어요. 강인한 분이셨죠.”

고인은 2000년 태평양 씨를 길러낸 경험을 담은 ‘소리하는 아이 장단치는 아빠’라는 교육서를 펴내기도 했다. 태평양 씨의 동생인 휘찬 군(16·전통예술고 2년)도 판소리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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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1위 국악 신동 '유태평양', "춘향가 부르다 아버지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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