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7-0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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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직접 농업 생산 활동에 참가하는 농민들이 논에서 김매기를 마칠 무렵인 백중(百中)을 전후하여 벌이는 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놀이는 주로 논농사가 발달한 중부 이남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전승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그 명칭과 놀이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일반적으로 호미씻이라고 부르는데 ‘논매기가 끝나고 호미를 씻어둔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호미씻이말고도 써레씻이(강원도), 길꼬냉이·대동굿·장원례·술멕이(전라도), 머슴날(전라도, 경상도), 백중놀이·풋굿·꼼배기·꼼비기·깨임말타기(경상도), 초연(草宴), 세서연(洗鋤宴) 등으로 그 명칭이 다양하다. 이 중에서 초연과 세서연은 풋굿과 호미씻이의 한자 명칭이다.

[유래]


백중의 전통은 불교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날 아귀보(餓鬼報)를 받는 중생의 구제를 위해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열었는데, 불교의 수입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고려시대에는 왕실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일반화된 행사였다고 한다.
이처럼 불교의 명절이었던 백중은 조선 후기에 이앙법(移秧法)이 일반화하기 시작하면서, 농업과 연관된 세시 행사로 자리 잡았다. 논농사에서 가장 고된 일인 김매기는 대개 음력 7월 보름을 전후하여 끝나는데, 농민들은 이를 기념하고 즐기기 위해 그들만의 축제를 열었고 그 시기가 백중과 겹쳐짐으로써, 불교축제인 백중에 농민축제의 성격이 덧붙여진 것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밀양도호부조(密陽都護府條)의 영남루기(嶺南樓記)를 보면 “긴 강을 굽어 끼고 넓은 들은 평평히 얼싸 안고 있으며, 농사는 부지런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밀양은 예로부터 농업이 성한 곳으로서, 백중놀이의 전통 역시 강성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밀양 지역의 농민들이 전승해온 백중놀이는 김매기를 마친 일꾼들이 푸짐한 먹거리를 즐기면서 활발한 놀이 활동을 펼치는 것이었다. 풍물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놀이의 핵심은 그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상일꾼’을 뽑아서 소의 걸채 또는 작두말 등에 태우고 삿갓을 거꾸로 씌우는 등의 가장을 시켜, 마을을 돌면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이었다.
밀양백중놀이는 농민들의 백중놀이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이 지역 한량들의 친목 조직이라고 전하는 보본계(報本契)의 들놀이에 그 뿌리를 둔 것이라고 한다. 이 들놀이의 중심적 연행은 ‘병신놀이(병신굿)’로서, 농민들이 일을 하다가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쉴 때 병신춤을 추며 양반을 풍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근거가 모호하다.

이 놀이는 1970년대에 들어 지역축제인 밀양아랑제에 첫선을 보였으며, 1972년부터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였다. 이 대회에 처음 참가할 때의 명칭은 ‘병신굿놀이’로서 인사굿, 신풀이굿, 병신굿, 모듬굿 등을 연행하였는데, 그 뒤 명칭과 내용이 여러 번 바뀌었으며 1980년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여하면서 놀이의 명칭을 ‘백중놀이’로 바꾸고, 내용도 오늘날 전승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수정, 보완하였다. 이 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뒤 1980년 11월 17일, ‘밀양백중놀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가 되었다.

[내용]

밀양백중놀이는 앞놀이, 본놀이, 뒷놀이 등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앞놀이는 잡귀맞이굿, 모정자놀이, 농신제 순으로 진행되는데, 제의적 요소가 강한 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잡귀맞이굿은 놀이꾼들이 놀이판 가운데에 세운 농신대를 향해 삼배(三拜)를 하여 오방신장을 일으켜 잡귀를 막고 신이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모정자놀이는 모심기와 논매기소리를 부르면서 모심고 논매는 동작을 흉내 내는 놀이이다. 이 놀이가 끝나면 씨름이나 들돌들기로 좌상, 무상, 숫총각을 뽑고 덧배기춤을 춘다. 흥이 고조되면 농신대 앞에 제물을 차리고 농신제를 지내는데, 이때 잡귀를 쫓기 위해 약쑥을 태운다. 농신대는 저릅대(삼대) 360개를 크게 네 부분으로 묶고 위에서부터 새끼줄 12개를 늘어뜨린 모양이다. 농신대의 네 묶음은 사계절을, 새끼줄 12개는 일년 열두 달을, 삼대 360개는 일년 360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사방으로 네 가지 색깔의 베를 묶어 사선으로 당겨 매는데, 북쪽에는 흑색, 남쪽에는 적색, 동쪽에는 청색, 서쪽에는 백색을 각각 매고 중앙에는 황색을 감아 오방신장을 상징한다고 한다.

본놀이는 앞놀이에 비해 극적 요소가 강한 작두말타기와 양반춤, 병신춤, 범부춤 등의 춤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두말타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신명이 솟구치면 양반이 머슴들의 놀이판에 끼어들어 양반춤을 추는데, 이러한 양반의 모습이 못마땅한 머슴들은 양반을 놀이판에서 쫓아내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병신춤을 춘다. 병신춤 대목에서는 곱추춤, 난쟁이춤, 꼬부랑할미춤, 떨떨이춤, 문둥이춤, 배불뚝이춤, 봉사춤, 절름발이춤, 중풍쟁이춤, 히줄래기춤 등 열 명의 배역들이 각자의 장기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이런 춤은 양반춤과는 대조적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구경꾼을 격동시킨다. 놀이판에서 쫓겨난 양반은 이를 보고 흥겨움을 참지 못하여 의관을 벗어던지고 놀이판에 뛰어들어 범부춤을 춘다. 놀이판을 돌면서 입장하여 장구잽이와 대무를 하는 범부춤을 달리 벌춤이라고도 한다.

뒷풀이는 오북춤과 화동마당으로 구성되는데, 놀이꾼과 구경꾼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며 노는 대동의 장이다. 오북춤은 풍물잽이 중에서 다섯 명의 북잽이들이 나와 역동적이 춤판을 벌이는 것이다. 흥겨운 덧배기장단에 맞추어 원형을 만들면서 조이고 푸는 것을 거듭하며 북배김을 하는데, 북배김은 북잽이들이 원심을 향해 모여들어 서로 마주 보며 북을 힘차게 치는 것으로서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다. 오북춤은 오행과 오기가 순조롭고 오체가 성하며, 오곡이 잘되어 오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원하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화동마당은 놀이꾼들과 구경꾼이 한데 어우러져서 한바탕 춤을 추며 신명을 맘껏 풀어내는 장으로서 이 놀이의 대단원을 이룬다.

[지역사례]

전남 진도 지역에는 농사를 제일 잘 지은 집에서 하는 ‘장원례(壯元禮)’라는 놀이가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그 집 머슴에게 술을 권하며 위로하고, 얼굴에 검정칠을 하여 도롱이를 입히고 머리에 삿갓을 씌워서 우습게 꾸민 후, 지게나 사다리 혹은 황소 등에 태워서 마을을 돌았다. 머슴이 총각이거나 홀아비인 경우, 마을 어른들이 마땅한 처녀나 과부를 골라서 장가를 들여 주고 살림도 장만해 주는 풍습이 있었다.

경남 창녕의 영산에서는 서로 품앗이를 하는 머슴끼리 한패가 되어, 나이에 따라 상머슴·중머슴·새끼머슴 등을 정한 후 소에 태우고, 풍물을 치고 영각(나발)을 불며 성내를 한 바퀴 돈 후 주인집을 찾아다니면서 음주가무를 즐겼다.
경북 예천의 금당실에서는 논매기를 마친 후에 날을 잡아 잔치를 벌였는데 ‘풋구먹는다’고 하였다. 풋구를 먹기 전날에 농로를 수리(治道)한 뒤에 풋구날이 되면, 일꾼들의 우두머리인 ‘상일꾼’의 주도로 주인집에서 내온 푸짐한 먹거리를 먹고 마시면서 가무를 즐겼다. 풍물 반주에 맞추어 놀았는데, 상일꾼은 삿갓을 뒤집어썼다.

[의의]

백중놀이는 고된 농업활동을 일단락 지은 농민들이 벌인 축제로서, 축제의 주체는 머슴과 소농이었고 지주 부농들은 이들을 후원하는 입장에 있었다.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머슴과 소농들은 맘껏 먹고 마시면서 신명을 풀어냈으며 지주부농들은 이를 용인하고 후원함으로써, 고용인과 피고용인, 지주와 소작인이 상생(相生)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밀양백중놀이는, 민속예술과 놀이 그리고 신앙을 바탕으로 구성한 공연물로서, 내고 달고 맺고 푸는 우리 마당놀음의 연행원리를 수용하여 신명풀이의 미학을 구현함으로써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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