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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경연대회] 2024 제44회 온나라국악경연대회 참가 신청 안내 (접수 3월 4일~8일)
    1. 대회명 : 제44회 국립국악원 온나라국악경연대회 2. 접수기간 : 2024년 3월 4일 ~ 3월 8일3. 문의전화 : 02-580-30534. 대회정보 더보기 (접수) ▶ 국립국악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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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연대회,공모
    2024-02-27
  • [祝] 영동난계국악축제, 대한민국축제콘텐츠 대상 ‘명예의 전당’
    충북 영동군 대표 축제 ‘영동난계국악축제’가 12회 대한민국축제콘텐츠에서 ‘명예의 전당’에 선정됐다. 올해 12회를 맞은 대한민국축제콘텐츠 대상은 축제콘텐츠 산업의 자긍심을 높이고, 한국의 지역축제가 세계적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역축제 콘텐츠 산업에 이바지한 지역축제 관계자를 시상하는 것. 축제 관련 산업·학계의 전문가와 축제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순수 민간단체가 평가해 축제 규모보다 콘텐츠가 우수하거나 발전 가능성이 큰 축제를 선정한다. 영동난계국악축제는 이번 평가에서 휴게시설 및 편의공간 제공, 전 세대를 아우르는 체험 프로그램 확충, 글로벌 축제 도약 기반 마련 등에서 높게 평가됐다. 세계 각국의 공연단이 참가한 ‘2023 영동세계민속축제’를 열어 ‘2025 영동세계국악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이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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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관련뉴스
    2024-02-24
  • [謹弔] 국악인 '박정아' 명창 암 투병 끝 별세… 김태연, 스승 마지막 길 지킨다
    국악인 박정아(49) 명창이 유방암 투병 끝에 2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가수 김태연(11)은 장례위원으로 스승의 마지막 길을 지킨다. ▶박정아 프로필 박정아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법 이수자다. ‘미스트롯2′에 출연한 국악 신동 김태연을 비롯해 많은 국악 인재를 길러냈다. 2000년 보성소리축제 전국대회 명창부 대통령상을 받았다. ‘국악신동’으로 알려진 김태연이 박정아 명창의 제자다. 고인은 생전 김태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2020년 채널A ‘아이콘택트’에 출연해 암 투병 중 사실을 고백하며 “제자들이 떠날 때 암 선고받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며 “태연이가 ‘선생님 다 떠나도 저는 안 떠날 거다’고 위로해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한테는 태연이가 특별한 제자다. 아픈 손가락”이라고 했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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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인소식
    2024-02-16
  • [국악뉴스] 2025영동세계국악엑스포 준비 꼼꼼하게! 영동군 행정지원단 구성
    2025년 세계국악엑스포를 개최하는 충북 영동군이 차질 없는 행사 준비를 위한 행정지원단을 발족했다. 영동군은 경찰, 교육지원청, 축제관광재단, 난계기념사업회 등이 총망라된 행정지원단(단장 강성규 부군수)을 구성했다고 2월 5일 밝혔다. 이들은 올해 초 발족한 조직위원회와 공조 체제를 구축해 국악엑스포 준비에 나서게 된다. 영동군은 내년 9월 12일부터 10월 11일까지 한 달간 '국악으로 만나는 미래문화, 희망으로 치유받다'를 주제로 세계국악엑스포를 열 예정이다. 국비 등 150억원이 투입되는 이 행사는 30개국 참가를 목표로 한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로부터 국제행사 승인을 받았고, 올해 초 조직위원회를 발족했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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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관련뉴스
    2024-02-07
  • [교육강좌] 국악 전공자 강점 살리는 국립국악원 직업 아카데미 (1월 29일~2월 20일까지 선착순 접수)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은 오는 2월 20일(화)과 21일(수),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틀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국악전공생을 위한 직업 아카데미2’를 선보인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설하는 국립국악원 직업 아카데미2는 국악·무용 전공자에게 미래에 선택할 직업 찾기와 맡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 키우기를 돕고자 마련한 교육 강좌이다. 이번 직업 아카데미2는 미래 국악인으로서의 활동에 기반이 되는 ‘민간에서 국악단체 생존하기’, ‘공연 홍보와 보도자료 쓰기’, ‘예술과 저작권’과 국악자원과 문화콘텐츠산업 분야를 접목해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하는 ‘영화와 드라마 음악 제작기’, ‘국악으로 TV예능프로 만들기’, ‘게임을 위한 창작 국악 작업기’의 주제로 총 6강좌가 열린다. 첫째 날인 2월 20일(화) 1강좌에서는 공연 제작 및 연출자로 활약하는 천재현의 <민간에서 음악하기: 정가악회 생존만들기>를 들어본다. ‘음악의 밭을 일구는 건강한 농부’를 비전으로, 국악의 모범적 현대화를 추구한 <정가악회>의 대표 등으로 25년간 활동했던 당사자가 민간 예술단체에서 겪었던 경험과 실례를 들려준다. 2강좌에서는 텐트폴 영화와 독립영화, 액션과 시대극, 한국 최초의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영웅> 음악에 이르기까지 맹활약 중인 황상준 음악감독의 <작업 과정과 음악의 역할>을 들어본다. 특히, 사극 <미인도>, <올빼미> 등에서 작업했던 국악의 사례를 소개하고, 이밖에 영화와 드라마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 등을 알려준다. 3강좌에서는 언론 활동 중 전문성을 인정받아 현역 기자 최초로 문화재청장을 지낸 정재숙 기자가 <국악 ‘신나게’ 드러내기: 공연 홍보 관련 보도자료 작성 및 계획 세우기>를 이야기한다. 홍보의 개념과 글쓰기 기초, 홍보 일정에 따른 보도자료 계획 세우기, 홍보 대상 규정과 언론사 특수성 파악하기, 보도자료 작성 등을 소개한다. 둘째 날인 21일(수) 1강좌에서는 대한민국 최초 국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 경연 프로그램 <풍류대장-힙한 소리꾼들의 전쟁>을 기획한 JTBC 예능 제작 본부 황교진 책임 프로듀서가 <풍류대장을 통해 바라본 국악>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6개월간의 경연 대장정에서 볼 수 있었던 국악인들의 참모습과 방송에서는 담을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2강좌에서는 SM, JYP엔터테인먼트 등의 뮤직 퍼블리싱을 담당하고, EBS 교양 프로그램 <클래스 E>를 통해 예술과 저작권법 강의를 진행했던 한국저작권위원회 조채영 연구원이 <예술과 저작권>을 주제로 강연한다. 저작권과 함께 지식사회를 살아가는 이 시대 사회인에게 필요한 법과 권리, 문화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 3강좌에서는 국내 문화유산을 게임 속에 담아내서 글로벌 150여 개국에 12개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 5,000만 명이 이용하는 선도적인 글로벌 게임 개발사의 위치를 차지한 펄어비스(PearlAbyss) 오디오실 4명의 작곡자가 <검은사막 ‘아침의 나라’ 게임을 위한 창작 국악 작업기>를 이야기한다. 대중과 게이머들에게 국악이 어떻게 다가가면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게임 영상과 사례로 알려주게 된다. 국립국악원 김영운 원장은 이번 직업아카데미가 “강연자(혹은 작업자)의 작업 결과물과 강연 등을 통해 이 시대 문화콘텐츠산업의 속도와 흐름, 깊이와 너비를 이해하는 열린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악 전공생에게 ‘국악인으로서의 강점을 최대’로 살리고, 나아가 역량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동력과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국립국악원 국악 전공생을 위한 직업 아카데미2는 17세 이상의 국악·무용 전공자가 선착순 접수에 따라 참여할 수 있다. 참가방법은 1월 29일(월)부터 2월 8일(목)까지 e-국악아카데미 누리집 (http://academy.gugak.go.kr) 에서 참가 신청서를 작성해 접수하면 된다. (문의 02-580-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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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관련뉴스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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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사업계획 밝힌 홍성덕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
    “올해를 ‘국악의 해’로 선포하고 한옥마을에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홈페이지홍성덕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66)이 올해는 전주실내체육관을 벗어나 한옥마을에서 ‘제37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6. 10~13) ’를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전야제도 화려하게 펼칠 계획이다. 역대 대사습 장원 출신 명창들이 나와서 함께하는 입제창, 풍물과 가야금 병창이 어우러지는 공연을 선보이겠다고 했다.전야제를 포함한 대회기간에 전주 MBC방송의 생중계를 통해 보다 재미난 공연을 보게 될것이라고 덧붙였다.한옥마을 내 장소에 대해 묻자 그는 “적절한 장소를 모색 중이다. 이를 계기로 한옥마을 내에 대사습청이 건립되길 바랄 뿐”이라며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손쉽게 우리소리를 접하게 하고 판소리 강습 등을 통해 전통문화를 더욱 활성화 시키고 싶다”고 말했다.“올해 대사습 놀이의 관전포인트라면 전야제 축제마당이 커지고 한옥마을에서 치러진다는 점이 색다르다고 볼 수 있어요. 올해도 많은 부분별 참가자는 물론 관광객들이 찾아서 전주의 맛과 멋, 흥을 마음껏 누리는 축제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그는 과거엔 오직 전주대사습놀이에 사람들이 몰렸으나 지금은 축제마당이 너무 다양해서 많은 관객들이 흩어지는 현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광주 임방울 국악제의 경우 시로부터 4억원을 지원받지만, 전주 대사습은 시에서 1억5천, 도에서 5천을 지원받아요. 역사와 전통을 지닌 전국최고의 국악 등용문 전주대사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이를 위해 불철주야 발로 뛰고 있는 이사장이지만 과거에 비해 예산을 협찬받는일이 보통이 아니란걸 체감하고 있다.하지만 올해도 도내를 포함해 해외에 전주대사습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지난해 일본 동경문화원에서 열린 전주대사습놀이 일본대회는 4월안에 응답을 기다리고 있고 오는 11월 30일에는 객석 2천여 석을 쓸 수 있는 ‘호주 스테이트 씨어터(State theatre)’에서 판소리 장원자들과 함께 다양한 공연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앞으로도 민속음악의 본향인 전주에서 전승되고 있는 전주대사습놀이를 통해 유능한 국악인을 배출하는 세계적인 대회로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해당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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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2
  • ‘밀양북춤’ 하용부 춤으로 돌아본 인생
    --> 밀양백중놀이 다음카페 바로가기 밀양 북춤의 최고 예인인 하용부(54·사진)씨가 9~10일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남산국악당에서 자신의 삶과 흥을 담은 전통 춤판을 벌인다. 하씨는 중요무형문화재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다. 5살 때 영남 양반춤의 대가인 할아버지(하보경·1906~1998)한테 춤을 배웠으며, 증조할아버지(하성옥)로부터 내려오는 ‘밀양 강변 춤’의 맥을 잇고 있다. 그는 이번 춤판에서 장기인 ‘밀양 북춤’과 ‘범부춤’, ‘양반춤’을 비롯해 평생 춤꾼으로 걸어온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실은 창작무 ‘영무’를 선보인다. 영남 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는 무대이자 영남 춤의 깊이와 마당춤의 신명 또한 맛볼 수 있는 기회다. 무대의 연주는 창작음악 연주단체인 ‘바람곶’(예술감독 원일)과 영화 <왕의 남자>의 풍물을 지도했던 ‘비나리’의 명인 김주홍(노름마치 예술감독)씨가 맡아 춤과 음악의 조율을 빚어낸다. 9일에는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중인 현대무용가 차진엽(엘디피 현대무용단 단원)씨가, 10일에는 소리꾼 장사익씨가 우정출연을 한다. 제작감독 장승헌(국민대 겸임교수)씨가 이번 공연의 얼개를 짜고, 영화 <황진이>로 2008 대종상 영화음악상을 받은 작곡가 원일(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원 교수)씨와 김성수(한국조형예술원 원장)씨가 각각 음악과 미술 감독을 맡아 무대를 꾸민다. 이번 공연은 하씨가 ‘프랑스 파리 상상축제’에 초청받아 3월30일부터 4월1일까지 바스티유 오페라 원형극장에서 여는 특별 공연에 앞서 선보이는 시연무대다. ‘상상축제’는 ‘파리 세계 문화의 집’이 1997년부터 해마다 세계 공연 문화를 발굴·소개하는 프랑스의 주요 축제로, 2007년 가야금 명인 황병기, 2008년 봉원사 영산재가 초청된 바 있다.2009/03/08 한겨레 정상영 기자 --> 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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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인소식
    2012-08-22
  • 국악경연대회 게시판 사용안내입니다.
    안녕하세요~ 국악포털 아리랑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곳은 전국에서 열리는 국악경연대회의 소식과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주관/주최 측에서는 간단한 회원 가입 후 대회요강 및 안내자료를 자유롭게 올리실 수가 있습니다. 많은 이용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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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연대회,공모
    • 해외
    2012-08-21
  • ‘여성국극의 화려한 부활, 평생의 꿈이죠’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홍성덕 이사장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잊혀진 것만 같은 여성국극의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이가 있다. 지난 추억 속의 문화가 아니라 다시 도약하는 대중문화로서 여성국극의 건재함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한 예인(藝人)이 있다. 그녀가 바로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홍성덕 이사장이다.TV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이전, 여성국극은 영화와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대중문화 예술이었다. 여성국극이 펼쳐지는 극장에는 관중이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여성국극인들은 지금의 아이돌 스타들 못지않은 열성적인 팬들을 거느린 국민적인 스타이기도 했다. 특히 남자 주인공 역을 맡았던 여성국극 배우들의 인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분명 여자인 줄 알면서도 그들의 움직임에, 그들의 소리에, 그들의 능란한 춤사위에 소녀들은 남루한 현실을 잊고 아련한 환상에 빠지곤 했다.세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우리 문화“한번 무대를 본 이들이라면 여성국극이 보여주는 그 묘한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임춘앵 김경수 박미숙 씨 등은 정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죠.” 판소리 김옥진 명창의 딸로 태어나 일찍부터 판소리에 그 재능을 인정받았던 소녀 홍성덕도 그랬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공연에 금세 넋을 잃고 말았다. “판소리만 하다가 20대에 갑자기 여성국극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여성국극을 처음 봤을 때의 그 매력이 잊혀지지 않아서였죠.”1967년에 여성국극 ‘선화공주’에서 선화공주 역을 맡았던 그녀다. 하지만 여성국극 활동도 잠시, 그녀는 다시 판소리의 길로 돌아가고 만다. “여성국극은 소리와 춤, 연기가 모두 어우러진 종합예술이죠. 어느 하나만 뛰어나다고 해서 잘한다고 할 수 없어요. 제가 다시 소리 공부에 매진하게 된 것은 하나라도 우선 제대로 해내고 싶어서였어요.” 그녀가 한창 소리 공부에 빠져 있을 때 여성국극은 점점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TV와 라디오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사람들은 TV 드라마나 라디오 드라마를 통해 웃고 울었다.그대로 사라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때부터 그녀는 직접 발로 뛰며 예전의 명창들과 여성국극인들을 찾아 나섰다. 사라진 것에 안타까워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다시금 부활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노력을 바쳤다.그 노력이 하나의 결실을 보기까지에는 10여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예전의 여성국극인들을 모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진 인재들을 발굴하고 가르치고 또 공연을 준비하기까지에 걸린 시간이었다. 그 사이 1981년에 남원 전국국악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명창으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1987년 국립극장 대극장에 직접 제작한 ‘선인 이차돈’이라는 작품을 올렸어요. 그때의 감격이야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그 후로도 공연은 계속되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축하 공연을 비롯해 매년 한 편 이상의 정기 공연은 물론 수십 회의 공연을 펼쳐나갔다. 1990년의 일본 오사카 초청 공연을 비롯해 해외 공연도 수없이 많이 다녔다. “1년에 한두 번씩 해외 공연을 나가는데 한 번 해외 공연을 나가면 30~40개 도시를 순회공연하곤 했죠.”특히 1996년에 호주 시드니 오페라 대극장에서 공연한 일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국내에서 시드니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한 팀은 많지만 거의 대부분 소극장 공연이죠. 대극장에서 공연한 건 우리밖에 없을 걸요?” 단순히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시드니 오페라 대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준비하던 그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2000년에 있었던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식 때 축하 공연을 한 일이나 평양에 가서 공연한 일도 잊지 못하는 공연 중 하나라고 한다.2009-07-14 한경매거진 --> 해당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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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1
  • 전통무용의 대중적 진화 꿈꾸는 춤꾼.. 서울시 무용단장 임이조
    “전통춤으로 ‘백조의 호수’ … 욕먹어도 도전한다” 임이조(林洱調·61)는 춤꾼이다. 무형문화재 승무 전수조교이며, 살풀이춤 이수자다. 인간문화재 이매방(85) 선생에게서 40년 가까이 춤을 배웠다. 근래에 임이조는 한량무를 더 많이 춘다. 원래는 한량·각시·주모·스님, 네 명이 등장하는 이야기극이다. 그런데 임이조는 이것을 혼자 춘다. 1인극으로 그가 새로이 창작했다.임이조는 서울시무용단장이다. 전통춤꾼으로서 이 자리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라 한다. 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는 ‘백조의 호수’다. 지난해에 임 단장이 만들었다. 차이콥스키 음악에 맞춰 전통 춤사위가 섞인 현대무용을 한다. 임이조표 ‘백조의 호수’는 올 11월 상하이에 수출된다. 국제아트페스티벌에 공식 초청을 받았다. 80명의 스태프를 인솔해 나간다. 여러 면에서 임이조의 춤 인생은 ‘파격’이다. 그는 “전통무용도 대중과 같이 호흡해야 한다”면서 “사람들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계속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글=성시윤 기자 ● ‘백조의 호수’부터 얘기해보죠. 차이콥스키 음악과 전통 춤사위로 만든 무용극이라고요.“네. 음악만 차이콥스키 음악이고요. 한국 창작무용이라고 보시면 돼요. 버선끝, 손끝, 발끝 동작은 한국 춤사위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한국 춤은 어느 음악에든지 다 출 수 있는 춤사위예요.”● 가장 먼저 배운 춤은 발레라면서요.  “여섯 살 때 발레를 배웠어요. 그래서 발레나 클래식을 좋아하죠. 하지만 ‘백조의 호수’는 편안한 마음에서 만든 작품은 아니에요. 많은 질타를 각오하고 만들었습니다.”● ‘백조의 호수’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사실 심청이, 춘향이, 황진이라든지 아주 좋은 소재가 우리에게 많아요. 그런데 이걸 가지고 외국에 가면 쉽게 어필이 안 된다는 겁니다. 서양 스토리를 들고 나간다는 게 참 안타깝죠. 하지만 외국인들도 자기네들이 쉽게 느낄 수 있고, 빨리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아요. ”● 이해하기 쉬운 작품을 하시는 거군요.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해야죠. 구경하고 나오면서도 ‘저게 무슨 작품이야’ 하고 관객이 이해를 못하는 작품도 많거든요. 그런 작품을 보면 작가 혼자서만 추상적인 생각을 한 것이에요. 관객들에게 쉽게 어필되는 작품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객석에서 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아무튼 춤을 아주 일찍 시작하셨네요. “저희 어머니가 현대무용을 하셨어요. 결혼하시고 춤을 접으셨죠. ‘딸을 낳으면 무용을 시켜야지’ 하셨대요. 저 데리고 춤도 많이 보러 다니셨는데, 공연 보고 나면 제가 흉내를 그렇게 잘 냈대요. 그래서 송범(1926∼2007) 선생님께 발레를 배우게 하셨어요. 국립무용단장을 아주 오랫동안 하신 분이죠.” ● 집안이 유복하셨나 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진 호강하고 살았죠. 저희 아버지가 미국문화원 공보실장도 하셨으니까요. 열한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모가 저를 맡아 키우셨어요. 제가 가자마자 아버지가 금방 사업에 실패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뒷받침 없이 춤을 배웠어요. 그래서 고생 많이 했죠.”그의 춤 창작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초등학교 5학년 학예회 때 같은 반 여자친구의 초립동이 옷을 빌려 입고 즉흥 춤을 췄다. 중학교 1학년 때 나간 ‘충남예술제’에선 남방춤을 역시 즉흥적으로 췄다.“그런 인연으로 자꾸 춤을 추게 되더라고요. 저희 어머니를 아는 분이 공짜로 발레도 가르쳐주셨고요.”열여덟 살에 그는 은방초, 김소희 같은 국악계의 거물을 만났다. 그리고 열아홉에 이매방을 만났다. “이매방 선생님이 승무를 추시는데, 소름이 쫙 끼쳤어요. 한국무용이란 게 저렇게 절제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구나. 저게 한국무용이구나 싶었죠. 춤을 깨닫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어요.”그 인연이 이제 40여 년이 됐다. 그는 춤으로 자수성가를 했다. 단국대 체육과를 다닐 때에는 휴학을 세 차례 했다. 형편이 어려워, 때론 외국 공연에 나가기 위해서였다. 그 바람에 대학을 10년 넘게 다녔다. 그러고선 30대 중반이던 85년에 자신의 무용단(‘선’ 무용단)을 만들었다.● 무용단을 일찍 만드셨네요.  “그때 제가 방송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임이조’ 하면 대한민국에서 방송을 제일 많이 하는 무용수였어요. 방송 활동을 하다 보니 단체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무용단을 만들었죠.”● 젊은 나이에 무용단 만든 것에 대해 주위 선배들은 뭐라 하셨나요.  “은방초 선생님이 저를 보고 ‘냄비 뚜껑이 끓지도 않고 넘었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저를 굉장히 영악하게 여기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춤에 미쳐 가지고 판 벌이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발표회를 많이 하고 빚도 많이 졌어요. 뭐, 공연을 정말 무한정 했죠. 저를 알리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방송도 열심히 나갔고요.”● 왜 그렇게 본인을 알려야 했나요.  “내가 조건이 안 되니까요. 무슨 ‘대학 교수’도 아니고, 집안 뒷받침도 없으니까요. 나를 알려야 사람들이 나를 쓰죠.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를 찾겠습니까. 그래서 방송을 많이 했던 거죠. 그러면서 명창, 명인들이랑 많이 친해졌죠. 그 덕에 제 춤도 많이 좋아졌어요. 생음악에 하다 보니 춤의 맛이 발전한 거예요. 이생강 선생님 같은 분들이랑 같이 공연을 했으니까요. 저는 녹음 테이프에 춤을 춘 적이 거의 없었어요. 아무튼 그래서 ‘임이조’라는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거죠. 그게 제 노력이었어요. 지금 서울시무용단장 하면서 어느 정도 관객이 모이는 것도 ‘임이조라는 이름 때문에 모인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춤꾼으로 춤을 추는 것과 무용단장을 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죠.  “그렇습니다. 서울시무용단장 중에 임기 못 채우고 나간 분들도 많아요. 제가 보니까 ‘희생’이 중요해요. 단장으로서 권위적으로 행동하기보다 희생을 먼저 해야 해요. 정기공연 할 때면 제 아내가 백몇십 명 반찬을 차려 갖고 와요. 우리 집사람이 음식점도 했던 사람이라 반찬을 열몇 가지 해서 뷔페식으로 차려 가지고 와요. 그러면 전부 다 감동들을 하잖아요. 또 저희 서울시무용단이 ‘찾아가는 공연’ 같은 것을 많이 하는데요. 제가 단원들한테 그렇게 얘기합니다. ‘무대가 좋네, 나쁘네, 이런 얘기 하지 마라. 내가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기도하는 마음으로 춤을 추면 관객들이 좋은 무대, 귀한 무대로 인정을 한다’고요.”● 그럼에도 전통춤이 인기가 많지 않습니다.  “우선 지루하다는 거예요. 전통춤은 자주 보고, 가까이 앉아서 봐야 신도 나고 흥도 납니다. 무대 멀리서 우리 춤을 볼 때는 아주 느리지 않습니까. 서양무용처럼 동작이 역동적이지도 않고요. 게다가 우리 춤은 웬만큼 잘 추지 않으면 감동을 못 줘요. 호흡에서, 내면에서 나오는 춤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통춤도 어필할 수 있는 소재와 흥미 본위로 가야 해요. 그럼 ‘진정한 예술이 나올 수 있을까’ 걱정스럽긴 하죠. 순수하게 예술만 한다면 관객이 많이 오나, 적게 오나를 따지지 말아야 해요. 그런데 저는 단장으로서 관객 숫자로 평가를 받거든요. 그러니 대중과 호흡을 같이해야 해요. ‘백조의 호수’를 만든 것도 어떻게 보면 제가 쇼맨십을 보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전통춤 하는 사람인데, 하필이면 왜 그걸 했겠어요. 그러니 사람들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그런 도전도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1인극 한량무, ‘백조의 호수’ 등은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이런 그를 스승 이매방 선생은 어떻게 볼까. 자기에게서 배운 춤을 제자들이 변형하는 것을 싫어한다. 전통을 고집한다. 그런데 임이조는 스승에게 배운 승무나 살풀이춤보다는 자신이 창작한 한량무를 더 많이 춰왔다. ● 스승과 사이는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란 존재가 있죠. 선생님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지금도 겁이 나요.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경거망동을 좀 덜 하게 되지 않나 싶어요. 예인이 지켜야 할 것도 많이 말씀해주셨고요. 그래서 따뜻한 연이 많아요. 여러 가지 희로애락 속에서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제 머릿속을 떠나 본 적이 없으니까요. 제 집사람도 선생님이 소개해 주셨고요. 별것 아닌 것 같고 노하셔서 섭섭할 때도 있지만, 마음에 그런 게 남진 않습니다.”● 한량무를 추는 것에 대해 스승께선 뭐라 하시나요.  “제가 78년부터 한량무를 췄어요. 그래서 이제 ‘임이조’ 하면 사람들이 한량무를 떠올려요. 선생님은 ‘승무, 살풀이 전수자가 돼가지고서 한량무를 춘다’고 막 뭐라 하셔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승무도 많이 추고 있습니다. 호호호.”● 한량은 ‘돈 잘 쓰고 잘 노는 남자’ 아닌가요.  “제가 추구하는 한량은 풍류를 알고, 멋을 아는 남자예요. 벼슬이나 관직에 구애 받지 않고 초월해서 멋을 즐기는 남자요.”임이조의 지향점은 ‘한량’인가 보다. 그가 손수 지은 이름 ‘임이조’에서도 그게 엿보인다.“본명은 임규흥이에요. 임이조는 예명이고요. 제가 사주를 좀 보는데요. 제 사주에 물이 부족하대요. 그래서 물결 이(<6D31>)자와 고를 조(調)자로 예명을 지었어요. 물결이 고르면 춤 추는 사람에게 좋지 않겠나 해서요.”● 선생님 사주가 어떤데요.  “글쎄요. 돈복은 없고요. 도 닦는 팔자더라고요. 남에게 봉사해야 하고요. 그러면서 명예를 좇기보다는 많은 보람을 남겨야 하는 운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임이조 단장은 전통예술의 대중화에 자신의 운명을 건 듯하다. 대중에게 친숙한 춤꾼이며, 예술단체를 이끌고 있으니 그에게 딱 맞는 일이다. 그는 10년째 자신의 공연을 기획해주는 강현준(43) 유민공연기획 대표와 함께 지난 7월 ‘부지화(不知畵)’라는 이름의 전통예술 공연 브랜드도 선보였다. 시는 알지만 그림은 도통 모르던 문인들을 꼬집는 문구 ‘백일소소 부지화(白日昭昭 不知畵, 밝고 밝은 대낮에 그림을 알지 못한다)’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춤, 소리, 음악이 어우러진 공연을 일년에 두어 차례 선보인다고 한다. 임 단장의 ‘파격’이 전통예술의 대중화에 어떻게 기여할지 궁금해진다.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뭐 뻔하지 않겠어요.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춤이죠. 제가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춤을 추게끔 돼 있었어요. 어머니 태몽에 호랑나비가 나왔다니까요. 나비가 춤 아니에요. 저는 죽는 날까지도 마음속으로 춤으로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춤은 내 삶 자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친에게서 춤을 이어받았고, 죽는 날까지 제가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춤을 못 춘다 하더라도 후진을 위해서 할 일이 있으니까요.” j 테일 >> “김덕수 그 친구,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죠”임이조는 일찍이 초등학교 5학년 방학 때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다. 전통예술을 하던 오춘광이란 사람이 소년소녀들로 구성한 패거리의 단원이 되면서다.“지방 극장에서 공연을 했죠. 그 시절만 해도 극장에서 영화 한 편 상영하고 국악 공연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또 영화를 상영하고요.”비슷한 또래의 초등학생 다섯 명이 모인 공연단이었다. ‘다섯 명의 천재 소년소녀’라는 이름이었다. 공연을 하고 나면 출연료로 500원, 그리고 공연이 늦어지면 야참비로 200원을 받았다 한다. 멤버 중에는 사물놀이로 유명한 김덕수도 포함돼 있었다.“저보다 두 살인가 아래였어요. 빵빵하게 생긴 친구가 장구 하나는 참 야물딱지게 친다 싶었죠. 국악인들이 ‘김덕수’ ‘김덕수’ 하는데 나중에 보니 그 친구였어요. 그렇게 유명해질 줄은 그때 생각도 못 했죠.”--> 중앙일보 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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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1
  •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부천무형문화엑스포 홍보대사로 창조적 미래 발견 디딤돌 역할 다짐 ‘사물놀이’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김덕수’. 최근 기획재정부로부터 국제 행사 승인을 받아 다음 달 28일 열리는 지구촌 첫 무형문화축제 ‘2010 부천무형문화엑스포’에 세계인들의 관심이 모아지면서 홍보대사인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에게 다시금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던 한국 전통음악계를 깨운 봄바람에 비유된다. 1978년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창단해 사물놀이를 대중화시킨 것은 물론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주역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물놀이는 모르는 외국인들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의 대표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김덕수’표 사물놀이가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 1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김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사물놀이의 경쟁력을 묻자 그가 먼저 제시한 것은 ‘온고창신((溫故創新)’이란 단어였다.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뛰어넘어 창조성을 투영한 ‘살아 있는’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뜻에서 김 교수가 만든 말이다. “전통은 지키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해석과 재창조 과정을 거치는 ‘퓨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외국인들에게 더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요.” 김 교수가 사물놀이에 재즈, 클래식, 힙합 등 다양한 분야와 결합시킨 크로스오버 공연을 자주 펼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시대정신이 꼭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대중의 취향도 바뀐다는 것. 가장 한국적인 장단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신명’ 나는 공연,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는 그의 이러한 소신을 통해 빛을 발하며 세계가 열광하는 브랜드 ‘김덕수 사물놀이’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김덕수 사물놀이는 영역을 막론하고 전통음악을 새로운 상품으로 창출해내는 모델이 되고 있다.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 주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코믹하게 드라마로 엮어낸 ‘난타’는 해외에서 인기몰이를 하며 제작사 PMC프로덕션에게 지난 13년 간 100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가져다 줬다. 올 초,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디지털 첨단기술과 아날로그적인 사물놀이를 접목해 ‘4D 홀로그램 사물놀이’라는 독특한 예술을 선보여 국내외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얼마 전에는 스마트폰으로도 즐길 수 있는 모바일 사물놀이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돼 화제가 됐다. 김 교수는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경쟁력 있는 한국 브랜드 육성과 전통상품 개발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인들이 우리 정체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그래야 우리 DNA가 담긴 진정한 한류 열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번 부천무형문화엑스포가 단지 옛것의 체험이 아니라 그 속에서 창조적인 미래를 발견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코노믹리뷰 2010년 08월 24일 전희진 기자 --> 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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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1
  • 홍성덕 여성국극협회 이사장~"60주년 맞은 여성국극 제2의 부활 꿈꾼다"
    "가마니를 땅바닥에 깔고 야외극장을 만들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리가 없을 정도였죠. 요즘 대중가수 인기에 버금갔어요. 중ㆍ고생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쫓아다녔죠."서울 종로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홍성덕(63) 이사장은 1950-1960년대 전성기를 누린 여성국극의 인기를 이렇게 회상했다.여성국극이란 창(판소리)과 춤, 연기가 혼합된 종합예술이다. 1940년대 창극에서 여성이 남성 역할을 맡게 된게 계기가 돼 파생한 분야다.여성국극예술협회는 1948년 춘향전을 줄거리로 공연된 '옥중화'를 그 시초로 보고 있다. 올해는 여성국극 탄생 60주년을 맞는 해다. 하지만 과거의 명성은 흐릿해지고 이제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실정이다. 홍 이사장은 "그래도 가능성은 넘쳐난다"며 여성국극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그는 "여성국극을 하려면 창과 춤, 연기도 좋아야 하고 용모도 뛰어나야 한다"며 "이 네 박자를 골고루 갖춘 만능 예인이어야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볼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한 가지 분야를 잘 하기도 어려운데 여러가지 재주를 갖춘 배우들이 출연하는 여성국극은 당시 관객들에게 새로운 무대였다. 특히 주역급 남장 배우들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홍 이사장은 "그들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2008-03-16 연합뉴스--> 해당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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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1
  • 국악포털 아리랑 운영사 '국악세계화연구소' 입니다.
    주식회사 국악세계화연구소 경기도 용인시 강남로 8, 우성메디피아 901~14호 Tel. 031-284-4832 / E-mail. korea@sori.me 2011년 국악정보 제공사 '코락' 오픈 http://korak.kr 2012년 국악포털 아리랑 http://arirangs.com 2013년 퓨전국악닷컴 http://fusiongugak.com 2018년 KBS국악대상 ‘출판 및 미디어상’ 수상 2020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선정 국악포털아리랑 전면 리뉴얼 http://gugak.org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K-culture 웹/앱 '리틀코리아 오픈 http://little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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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1
  • 사투리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의 민요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1. 언어가 다르면 노래가 달라진다. 15세기 한국의 음악문화는 대단히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었다. 편경 편종과 같은 악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중국음악어법의 문묘제례악이나 한국음악어법의 종묘제례악악을 작곡하였는데 그 음악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음악학도 발달하여 그 당시의 음악이론을 집대성한 악학궤범(樂學軌範)같은 책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 악학궤범에 보면 노래에 대하여 “歌所以永言而和於律”이라고 간단히 언급한 구절이 있다. 이 말은 “노래란 말을 길게 하여 음율에 맞춘것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말이 노래가 된다는 것이다. 하긴 인도노래는 인도말을 길게 하여 인도음율에 맞춘것이고 중국노래는 중국말을 길게 하여 중국음율에 맞춘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같은 논리로 우리나라 노래는 한국말을 길게 하여 우리나라의 음율에 맞춘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말이 노래가 되는 과정을 검증해 보자. 본격적인 노래가 아니면서 노래의 요소가 많은 언어현상을 찾아보자. 옛날 어머니나 할머니들은 아기를 재울때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아가 잘도 잔다. 멍멍개야 짓지마라 우리아가 잘도잔다.”와 같이 읊조리면서 아기를 재웠다. 그런 소리에는 장단도 있고 곡조도 있으니까 노래의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어린학생들이 구구단을 외울때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이구 십팔”하고 외운다. 그 소리에도 장단과 곡조가 있다. 상인들이 외치는 소리에도 곡조가 있고 농부들이 소를 몰면서 하는 소리에도 곡조가 있다. 이런 소리들이 노래의 바탕이 된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우리노래의 모습은 어떨까?. 간단한 것으로는 ‘새야새야’와 같이 3음으로 되는 것이 있다. 완전4도 위에 장2도를 쌓아 올려 만들어지는 이 3음계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새야새야’의 곡조가 된다. 그런데 그 곡조도 처음을 하행으로 시작하여 “솔레라솔- 라솔레레- 라레라라- 라솔레레-”와 같이 하는 경우도 있고 처음을 상행으로 시작하여 “라레라라- 라솔레레- 솔레라솔- 라솔레레-”와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두가지 곡조가 다 쓰인다. 또 가사를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로 해도 마찬가지이다. 말을 읊조리듯이 하여 만들어지는 간단한 민요는 3음만으로도 노래가 된다. 그런데 이 ‘새야새야’는 박자가 5박자이다. 서양음악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5박자가 우리노래에서는 가장 간단한 민요에도 사용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노래에는 5박자가 많이 쓰인다. 농촌에서 모를 심을때 부르는 모심기 노래에도 “심어주게- 심어주게- 심-어주- 게---- 오-종조옹 줄-모르을 심-어주- 게---- ”와 같이 5박자로 부른다. 우리말이 석자나 넉자로 이루어지는 말이 많기 때문에 그 석자나 넉자를 우리가 말하는 식으로 읊조리면 5박자가 될 때에 편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5박자를 늘이면 8박자가 된다. 서양음악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5박자와 8박자가 우리음악에서는 아주 많이 사용하는 박자가 되어 있다. ‘시조’의 초장은 박자가 5․8․8․5․8 이니까 5박과 8박이 섞여 있는 박자인데 경기민요인 ‘노랫가락’도 그런식으로 되어 있다. ‘노랫가락’은 ‘시조’와 같은 3장형식의 시를 가사로 하는 노래인데 “청-산리- 벽게-수-야-- 수이---감을- 자랑-마- 라---- ” 와 같이 5박과 8박을 섞어서 박자로 쓰고 있다. 현행의 시조나 가곡이 다 5박구조와 8박구조로 되어있고 풍류로 연주하는 영산회상의 상영산이나 중영산 세령산이 다 5박구조이다. 많은 궁중음악이나 고려때 가요로 알려진 ‘가시리’ ‘사모곡’ ‘서경별곡’ 청산별곡‘ 같은 노래도 다 5박구조와 8박구조로 되어 있다. 서양음악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5박자와 8박자가 우리음악에서는 아주 흔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말이 그런 박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말에는 사투리가 있다. 음악이라는 두 글자도 전라도에서는 “으마악-”과 같이 발음하고 경상도에서는 “어막”과 같이 발음한다. 전라도의 사투리는 소리를 뒤로 밀면서 발음하기 때문에 소리의 세(勢)가 뒤쪽으로 계속 진행할려는 경향을 갖는데 반하여 경상도 사투리는 뒤가 끊어지면서 앞쪽에 액쎈트가 가게 된다. 그러면 두 지방의 민요도 그와 같이 발달하게 된다. 전라도 민요는 선율이 계속 진행할려는 경향을 갖기 때문에 ‘진도아리랑’의 첫부분이 “무운경- 새재애느은 웬 고오오갠가 - ” 하면서 뒤를 떨면서 지속하고 있다. 한편 경상도 민요는 “어막”이라는 말과 같이 앞에 액쎈트를 주면서 뒤는 곧 끊어지게 소리내기 때문에 ‘밀양아리랑’의 경우 “날쫌보소오 날쫌보소오”와 같이 부르게 된다. 사투리의 억양이 그대로 민요에 반영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투리에 따라서 민요의 구조나 특징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라도민요 경상도민요 경기민요등의 갈래가 형성되게 되고 민요권이라는 것이 성립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땅덩이는 그리 크기 않지만 각 지방마다 독특한 사투리가 있어서 그와 같은 맥락의 특징있는 민요가 많이 발달 하였다. 내가 채집해 본 바로 우리나라의 민요는 제주도 한 도에서 300곡 이상이 나올 정도로 많은 민요가 발달하였다. 나는 그 중 170곡 정도를 골라 악보를 낸 적이 있다. 악학궤범의 언급대로 노래란 말을 바탕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말이 다르면 노래가 달라진다. 인도에는 인도식 노래가 중국에는 중국식 노래가 발달하는 것도 다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사투리가 다르면 다른 특징의 노래가 발달하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우리말을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노래문화를 창출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 더 많은 내용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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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18
  • 제12회 세계 한국 국악경연대회 정보
    대회명 : 제12회 세계한국국악경연대회 한국 국악인들과 전세계에 있는 재외동포 후세들에게 한민족의 전통문화 예술의 함양된 실력을 평가 받고, 인증 받는 계기를 마련해 줌으로 조국문화의 긍지를 갖게 해주며, 세계문화의 중심인 뉴욕에서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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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연대회,공모
    201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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