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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경연대회] 2024 제44회 온나라국악경연대회 참가 신청 안내 (접수 3월 4일~8일)
    1. 대회명 : 제44회 국립국악원 온나라국악경연대회 2. 접수기간 : 2024년 3월 4일 ~ 3월 8일3. 문의전화 : 02-580-30534. 대회정보 더보기 (접수) ▶ 국립국악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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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연대회,공모
    2024-02-27
  • [祝] 영동난계국악축제, 대한민국축제콘텐츠 대상 ‘명예의 전당’
    충북 영동군 대표 축제 ‘영동난계국악축제’가 12회 대한민국축제콘텐츠에서 ‘명예의 전당’에 선정됐다. 올해 12회를 맞은 대한민국축제콘텐츠 대상은 축제콘텐츠 산업의 자긍심을 높이고, 한국의 지역축제가 세계적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역축제 콘텐츠 산업에 이바지한 지역축제 관계자를 시상하는 것. 축제 관련 산업·학계의 전문가와 축제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순수 민간단체가 평가해 축제 규모보다 콘텐츠가 우수하거나 발전 가능성이 큰 축제를 선정한다. 영동난계국악축제는 이번 평가에서 휴게시설 및 편의공간 제공, 전 세대를 아우르는 체험 프로그램 확충, 글로벌 축제 도약 기반 마련 등에서 높게 평가됐다. 세계 각국의 공연단이 참가한 ‘2023 영동세계민속축제’를 열어 ‘2025 영동세계국악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이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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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관련뉴스
    2024-02-24
  • [謹弔] 국악인 '박정아' 명창 암 투병 끝 별세… 김태연, 스승 마지막 길 지킨다
    국악인 박정아(49) 명창이 유방암 투병 끝에 2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가수 김태연(11)은 장례위원으로 스승의 마지막 길을 지킨다. ▶박정아 프로필 박정아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법 이수자다. ‘미스트롯2′에 출연한 국악 신동 김태연을 비롯해 많은 국악 인재를 길러냈다. 2000년 보성소리축제 전국대회 명창부 대통령상을 받았다. ‘국악신동’으로 알려진 김태연이 박정아 명창의 제자다. 고인은 생전 김태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2020년 채널A ‘아이콘택트’에 출연해 암 투병 중 사실을 고백하며 “제자들이 떠날 때 암 선고받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며 “태연이가 ‘선생님 다 떠나도 저는 안 떠날 거다’고 위로해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한테는 태연이가 특별한 제자다. 아픈 손가락”이라고 했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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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6
  • [국악뉴스] 2025영동세계국악엑스포 준비 꼼꼼하게! 영동군 행정지원단 구성
    2025년 세계국악엑스포를 개최하는 충북 영동군이 차질 없는 행사 준비를 위한 행정지원단을 발족했다. 영동군은 경찰, 교육지원청, 축제관광재단, 난계기념사업회 등이 총망라된 행정지원단(단장 강성규 부군수)을 구성했다고 2월 5일 밝혔다. 이들은 올해 초 발족한 조직위원회와 공조 체제를 구축해 국악엑스포 준비에 나서게 된다. 영동군은 내년 9월 12일부터 10월 11일까지 한 달간 '국악으로 만나는 미래문화, 희망으로 치유받다'를 주제로 세계국악엑스포를 열 예정이다. 국비 등 150억원이 투입되는 이 행사는 30개국 참가를 목표로 한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로부터 국제행사 승인을 받았고, 올해 초 조직위원회를 발족했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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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관련뉴스
    2024-02-07
  • [교육강좌] 국악 전공자 강점 살리는 국립국악원 직업 아카데미 (1월 29일~2월 20일까지 선착순 접수)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은 오는 2월 20일(화)과 21일(수),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틀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국악전공생을 위한 직업 아카데미2’를 선보인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설하는 국립국악원 직업 아카데미2는 국악·무용 전공자에게 미래에 선택할 직업 찾기와 맡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 키우기를 돕고자 마련한 교육 강좌이다. 이번 직업 아카데미2는 미래 국악인으로서의 활동에 기반이 되는 ‘민간에서 국악단체 생존하기’, ‘공연 홍보와 보도자료 쓰기’, ‘예술과 저작권’과 국악자원과 문화콘텐츠산업 분야를 접목해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하는 ‘영화와 드라마 음악 제작기’, ‘국악으로 TV예능프로 만들기’, ‘게임을 위한 창작 국악 작업기’의 주제로 총 6강좌가 열린다. 첫째 날인 2월 20일(화) 1강좌에서는 공연 제작 및 연출자로 활약하는 천재현의 <민간에서 음악하기: 정가악회 생존만들기>를 들어본다. ‘음악의 밭을 일구는 건강한 농부’를 비전으로, 국악의 모범적 현대화를 추구한 <정가악회>의 대표 등으로 25년간 활동했던 당사자가 민간 예술단체에서 겪었던 경험과 실례를 들려준다. 2강좌에서는 텐트폴 영화와 독립영화, 액션과 시대극, 한국 최초의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영웅> 음악에 이르기까지 맹활약 중인 황상준 음악감독의 <작업 과정과 음악의 역할>을 들어본다. 특히, 사극 <미인도>, <올빼미> 등에서 작업했던 국악의 사례를 소개하고, 이밖에 영화와 드라마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 등을 알려준다. 3강좌에서는 언론 활동 중 전문성을 인정받아 현역 기자 최초로 문화재청장을 지낸 정재숙 기자가 <국악 ‘신나게’ 드러내기: 공연 홍보 관련 보도자료 작성 및 계획 세우기>를 이야기한다. 홍보의 개념과 글쓰기 기초, 홍보 일정에 따른 보도자료 계획 세우기, 홍보 대상 규정과 언론사 특수성 파악하기, 보도자료 작성 등을 소개한다. 둘째 날인 21일(수) 1강좌에서는 대한민국 최초 국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 경연 프로그램 <풍류대장-힙한 소리꾼들의 전쟁>을 기획한 JTBC 예능 제작 본부 황교진 책임 프로듀서가 <풍류대장을 통해 바라본 국악>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6개월간의 경연 대장정에서 볼 수 있었던 국악인들의 참모습과 방송에서는 담을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2강좌에서는 SM, JYP엔터테인먼트 등의 뮤직 퍼블리싱을 담당하고, EBS 교양 프로그램 <클래스 E>를 통해 예술과 저작권법 강의를 진행했던 한국저작권위원회 조채영 연구원이 <예술과 저작권>을 주제로 강연한다. 저작권과 함께 지식사회를 살아가는 이 시대 사회인에게 필요한 법과 권리, 문화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 3강좌에서는 국내 문화유산을 게임 속에 담아내서 글로벌 150여 개국에 12개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 5,000만 명이 이용하는 선도적인 글로벌 게임 개발사의 위치를 차지한 펄어비스(PearlAbyss) 오디오실 4명의 작곡자가 <검은사막 ‘아침의 나라’ 게임을 위한 창작 국악 작업기>를 이야기한다. 대중과 게이머들에게 국악이 어떻게 다가가면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게임 영상과 사례로 알려주게 된다. 국립국악원 김영운 원장은 이번 직업아카데미가 “강연자(혹은 작업자)의 작업 결과물과 강연 등을 통해 이 시대 문화콘텐츠산업의 속도와 흐름, 깊이와 너비를 이해하는 열린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악 전공생에게 ‘국악인으로서의 강점을 최대’로 살리고, 나아가 역량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동력과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국립국악원 국악 전공생을 위한 직업 아카데미2는 17세 이상의 국악·무용 전공자가 선착순 접수에 따라 참여할 수 있다. 참가방법은 1월 29일(월)부터 2월 8일(목)까지 e-국악아카데미 누리집 (http://academy.gugak.go.kr) 에서 참가 신청서를 작성해 접수하면 된다. (문의 02-580-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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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관련뉴스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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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새재아리랑 함께 배워요”
    문경문화원 토요문화학교를 참관한 곽영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왼쪽)이 이명순 강사로부터 문경새재아리랑을 배우고 있다. <문경문화원 제공> 곽영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지난 25일 문경문화원이 운영하는 청소년 대상 토요문화학교를 참관하고 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격려했다. 문경문화원이 지난 3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토요문화학교는 ‘즐기는 문경새재아리랑’이라는 주제로 문경시내 초등학생 22명이 문경의 전통민요인 문경새재아리랑을 배우고 북과 장구 등 사물을 함께 연주하고 있다. 곽 차관은 이날 어린이들이 문경새재아리랑을 배우고 있는 교실을 찾아 강사에게 문경새재아리랑 한 소절을 배워 불러보는 등 관심을 나타냈다. 곽영진 차관은 “어린이들이 휴일에 우리 전통문화예술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어린이들을 격려했다. 문경=남정현기자 namun@yeongnam.com --> 해당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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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랑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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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9
  • 제18회 경기국악제 전국경연대회
    1. 일시 : 2012년 9월 01일(토) ~ 9월 02일(일) / 2일간 2. 장소 : 경기도문화의 전당 3. 주최 : 경기도. 한국국악협회 경기도지회 4. 경연부문 : 가. 명창부 : 경․서도 입창, 좌창 나. 일반부 : 경․서도 민요 ․ 전통무용 ․ 기악 ․ 시조 ․ 농악 다. 학생부 : (경․서도 민요, 좌창) ․ 전통무용 ․ 기악 ․ 시조 ․ 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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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연대회,공모
    • 인천,경기
    2012-08-29
  • 2012 제16회 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개최
    1. 일시 : 2012년 10월 5일(금)~10월 6일(토) 2일간 ※국악인 추모제 : 10. 04(목) 17:00 동편제전수관 시상식 : 10. 06. 16 : 30 실내체육관 특설무대 2. 장소 : 동편제전수관, 실내체육관 특설무대 3. 주최: 구례군 4. 주관 : (사)한국국악협회구례지부 5.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악방송, 전라남도, 전라남도교육청, (사)한국예총, (사)한국국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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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연대회,공모
    • 광주,전라
    2012-08-29
  • ‘아리랑’ 주제 UCC 9월 15일까지 공모
    (사)정선아리랑제위원회(위원장 이종영)가 ‘아리랑’을 주제로 UCC 작품을 공모한다. 이번 공모전은 전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오는 6일부터 9월 15일까지 접수하며 대상작품은 상금 100만원을 시상한다. 수상자는 정선아리랑제위원회와 공동주관처인 등대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해당학교 및 기업체에 응모자의 우수한 재능과 수상내역을 통지, 추천한다. 정선/박창현 ▶ 해당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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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랑소식
    • 아리랑뉴스
    2012-08-29
  • 8월 27일부터 5일간 ~ 국악방송 ‘꿈꾸는 아리랑’ 국악 재조명
    ▲ 국악방송 ‘꿈꾸는 아리랑’ 10인의 출연진들. (위 왼쪽부터) 임진모, 이지영 (가운데) 장재효, 윤지은, 김희선, 황우창 (아래 왼쪽부터) 이정헌, 허윤정, 이예준, 김동원. (사진제공: 국악방송) 국악평론가 윤중강 진행… 10인 명사 참여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한국음악전문채널 국악방송이 ‘세계음악으로서의 국악’을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특집-국악 세계화, 10인에게 길을 묻다’를 오는 27일부터 5일간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은 국악평론가 윤중강이 진행하는 ‘꿈꾸는 아리랑’의 기획특집으로, 연주자·평론가·월드뮤직축제 관계자·문화행정가 등 한국음악을 대표하는 10인의 명사와 함께한다. 명사로는 김동원, 김희선, 윤지은, 이예준, 이정헌, 이지영, 임진모, 장재효, 허윤정, 황우창 등이 출연한다. 이들은 세계 속의 한국음악을 짚어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또 월드뮤직시장을 달구고 있는 다양한 음악과 해외로 뻗어나가는 젊은 음악인들의 인터뷰를 비롯해 해외 월드뮤직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담을 예정이다. 해당기사 더 보기 ->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4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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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관련뉴스
    2012-08-29
  • 제주에 터잡은 채상소고춤 김운태 명인
    채상소고춤 --> 다음카페 바로가기 "전통무대공연 개발..공연예술인 키우겠다" "앞으로 제주도는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전통무대공연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제주는 전통예술부흥은 물론 공연예술인을 키우는 메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동영상 뉴스보기 전립(모자)에 흰 띠를 달아 돌리면서 추는 채상소고춤의 명인 김운태(48)씨가 9일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제주민속촌박물관 공연장에서 나긋한 춤동작을 시작하자 관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호남·영남·경기의 독특한 장단과 함께 다양한 춤사위가 흘러나왔고, 엇박으로 띠를 빠르게 돌리며 기예에 가까운 동작을 선보일 때마다 관객들은 신이 나 저절로 어깨를 들썩였다. 소고춤을 통합한 젊은 예인으로 이름난 그는 벌써 2년 넘게 제주도에 머물며 하루에 세 차례 공연을 하고 있다. 제주의 전문예술공연단체인 '전통노리안 마로'와 함께 '전통예술흥행프로젝트-명인'의 예술감독을 맡은 김씨는 지난 1일 이정희(김숙자류 매헌춤보존회 회장)의 도살풀이춤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이날 역시 19일 있을 국립국악원 공연을 앞두고 예기(藝妓)인 장금도(83.여) 명인의 민살풀이춤에 고수로 나서 호흡을 맞추는 중이었다. 2009년 두달만 머물고자 제주에 내려온 그는 퓨전 열풍에 밀려 외면받고 있는 전통예술을 부흥하기 위해 마로의 젊은 예인들과 함께 제주도에 남은 인생을 걸어 보기로 의기투합했다. 공연장과 가까운 곳에 민박집을 통째로 빌려 먹고 자며 관객과 예술가 모두 감동과 흥을 누릴 수 있는 무대를 연구하고 있다. 지천명(知天命)을 앞둔 그에겐 아침저녁으로 운동하며 체력관리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서울에는 예술가가 예술만 하고 살기가 힘들지만 제주도는 다릅니다. 국내외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 있기 때문에 관객을 확보하기 쉽고, 옛날 예인들처럼 살 수 있어 문화 자체가 상품이 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죠." 삶이 춤에 녹아내려 자연스럽게 몸에 배야 한다고 믿는 그에게 삶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는 제주는 그야말로 '황금밭'이었던 셈이다. 예술의 기운이 샘솟는 천혜의 자연조건에서 작품을 잘 만들고 사람을 잘 키우면 일본의 가부키를 능가하는 문화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그는 2013년께 제주시내권에 전용극장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곳에서 제주도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예술작품을 상시공연하고 나아가 정재(궁중무용) 등 궁중예술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또다른 목표는 제주에서 전통예술의 대를 이을 인재를 키우는 것. 어린 시절 호남여성농악단의 일원으로 공연장에서 자란 그는 후학들에게도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한바탕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단다. 무대와 관객을 중심으로 풍부한 현장경험을 쌓은 공연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 것이 그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다. (제주=연합뉴스) 김지선 기자 -->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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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인소식
    2012-08-28
  • '전통문화 한류' 로드맵 만든다
    지원 법률안 발의···정책토록회서 의견 수렴K-pop 등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한류 열풍'을 전통문화로까지 확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 역시 전통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의지가 크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조차 전통문화는 아직 제대로 된 산업이라고 말하기도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전통문화 발전을 위해 전통문화를 독립된 산업으로 만들기 위한 법체계 수립,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이를 위해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도 있다.한나라당 김광림 의원 등은 지난달 21일 '전통문화산업의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 의해 시행돼야 하는 사항으로 △중·장기 기본계획 3년마다 수립 △실태조사 △전통문화산업 표준화 권고 △전통문화촌 지정 및 지원 △전문인력 양성 등 15가지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전통문화를 산업화해서 체계적인 실태 조사와 파악, 산업 표준화, 인력 양성, 정부차원에서 지원 확대 등이 골자다.또 지난 2011년 11월 9일 국회에서 열린 '전통문화, 산업화의 길을 열다'라는 정책토론회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의견들이 오갔다. 이날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은 '한류 속의 전통문화'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드라마 '대장금'은 역사적 사실에만 국한되지 않고 외식, 출판, 영상, 게임, 애니메이션, 음악,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치며 산업적 효과를 거뒀다"며 "이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재발견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고 말했다.한 이사장은 이어 "품격있는 한식으로 국제적 위상을 올리기 위해서는 훌륭한 식문화가 담겨진 메뉴를 만들어 무형의 유산이 되도록 해야한다"며 "의궤, 궁중연회도 등 훌륭한 기록문화유산을 통해 한국의 최고 문화를 통합적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고문헌이나 민화에서 가치 있는 문화적 자료를 더 발굴해 디자인과 스토리텔링을 새롭게 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왕릉 등 유적 활용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전통문화, 산업의 날개를 달다'를 주제로 발표한 유동환 안동대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교수는 "전통문화는 제품이 아니라 문화가치를 파는 4차산업"이라며 육성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유 교수는 의류·식품·공예·건축 등을 포함한 국내 전통문화산업 규모는 전통의류 5조1187억원, 전통식품 9조6390억원, 전통공예 2조6천881억원, 전통건축이 7조6618억원 등 총 25조1077억원으로 전체 산업대비 약 1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전통문화산업 규모가 미약한 원인으로 전승자 부재, 상품 디자인 기획 및 마케팅력 부족, 가내 수공업 수준의 기업환경, 협소한 내수시장, 온라인 시장 미정착, 단기행사성 정책 지원 및 부처별 사업 분산 등을 언급했다.유 교수는 "전통문화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대량생산, 표준화, 문화가치 중심의 차별화 전략 등이 필요하다"며 "특정계층 의존형 시장 구조에서 벗어나 소비자들의 숨은 욕구를 찾아 상품화하는 시장선도형 산업으로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전통문화촌 지정·육성, 전통문화산업단지 진흥, 소재와 문양 등 전통문화자원을 활용한 상품화 지원, 전통문화산업 공동브랜드 개발, 관광과 연계한 전통의례 및 생활체험 프로그램 보급 등 산업융합형 사업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머니투데이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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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8
  • 2011년 11월 8일 부산국악방송 (FM 98.5MHz) 개국
    국악전문채널인 '부산국악방송'이 2011년 11월 8일 오후 부산국악원 연악당에서 개국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이날 개국식에는 허남식 부산시장 등 내외빈이 참석해 부산국악방송의 출범을 축하했다. 이어 열린 부산국악방송 개국기념 공연에서는 서편제의 소리꾼이자 국악방송 '창호에 드린 햇살'의 진행자인 오정해 씨의 진행으로 부산국악원 정악단을 비롯해 부산민속예술보존회, 김용우, 이종대, 박대성, 박환영, 김남순, 권은영, 신문범 등의 명인들과 2011년 '21C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어쿠스틱 앙상블 재비가 신명나는 공연을 펼쳤다. 부산국악방송은 FM 98.5MHz를 통해 부산과 김해, 양산시 일부지역의 청취자 350만 명을 대상으로 전파를 쏜다. 전통음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지향하는 이 방송은 판소리, 민요, 정가 등 다양한 전통음악을 비롯해 퓨전창작음악, 문화계 소식, 특강, 실황중계, 인물 초대석, 국악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24시간 방송하게 된다. 먼저, 전통음악 전문 감상 프로그램인 '흐르는 음악처럼'(매일 오전 3~5시)이 김민경 아나듀서의 진행으로 부산에서 자체 제작하고, 문화예술 정보 프로그램인 '꿈꾸는 아리랑'(매일 오후 4~5시40분)은 다양한 음악과 국악계 소식을 전하는 시간으로 꾸며진다. 또 각 지역의 국악소식을 전하는 '꿈꾸는 아리랑'의 국악소식 通(통)을 통해 매주 월요일 김민경 아나듀서의 진행으로, 부산을 비롯한 김해와 양산시 일대의 다양한 국악소식을 생방송으로 전한다. 더불어 실황 음악 중계 프로그램인 'FM국악당'(매일 오후 7시30분~오후 9시)은 매주 금요일마다 부산을 비롯한 김해, 양산지역의 다양한 공연을 중계방송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부산국악방송은 전통음악방송에 걸맞게 부산국악원 내 연주소를 마련하고, 부산지역의 전통음악 확산에 다방면으로 기여도 할 계획이다. 부산 뉴시스 하경민 기자 ->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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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8
  • 한국 신무용의 대표적인 인물 - 최승희와 조택원
    피카소가 후원한 최승희보석 휘감은 '보살춤' 인기…美·유럽 공연 500회 넘어해방 후 월북…말년에 숙청개인 발표회 먼저 한 조택원피아노 반주로 승무 창작춤…최승희 제자와 같이 공연도韓-日 문화외교에 큰 역할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한국 신무용은 일제 식민지 강점기에 태어났다. 춤으로 사상을 표현할 수 있다고 깨달은 지식층 젊은이들이 서양식 테크닉에 조선의 문화를 접목해 신무용이라 했다. 가장 암울한 시대에 태어난 한국춤인 만큼 신무용은 억압받는 조선인들에게 즐거움은 물론 긍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조선의 춤은 조선인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일본과 중국 관객들에게, 세계 2차대전의 포연 속에서 이 춤을 본 바다 건너 서구 관객들에게도 황홀함과 감동을 선사했다.◆ 함흥군수의 아들과 양반가의 딸 한국 신무용의 대표적인 인물이 최승희(1911~1967)와 조택원(1907~1976)이다. 이 두 사람은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학과성적도 우수했을 뿐만 아니라 예체능과 글재주 등 다방면에 출중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기대와 촉망을 한몸에 받았다.함흥군수인 조부와 대한제국 군인 부친을 둔 조택원은 소학교 시절부터 러시아 혁명에 쫓겨 함경북도 타국까지 피난 온 러시아인들을 가까이서 접했다. 비운의 현실 속에서도 밤만 되면 자신들의 민족 춤을 추며 시름을 달래는 러시아인들을 보고 춤에 대한 꿈을 품기 시작했다.정승판서 가문에, 아버지는 진사에 합격한 양반가 출신 최승희는 열여섯 살 되던 1926년, 경성의 공회당에서 처음으로 춤 공연을 보게 됐다. 당시 조선에 처음으로 공연 온 일본의 이시이 바쿠 무용단의 춤을 관람했는데, 조국의 현실을 생각나게 한 ‘사로잡힌 사람’이 그를 매료시켰다. 공연이 끝나고 최승희는 무대 뒤에서 이시이 바쿠를 만나 춤을 배울 결심을 했다. 네 살 위의 조택원이 춤을 먼저 알았지만, 본격적 수련은 최승희가 먼저 시작한 셈이다. 최승희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도망치듯 춤을 배우러 일본으로 간 지 1년 만에 인기를 얻었다. 조택원은 이시이 바쿠의 두 번째 조선 공연에서 역시 ‘사로잡힌 사람’을 보고 그의 문하생이 됐다.◆ 같은 스승…불교 소재로 춤 창작최승희와 조택원은 같은 스승 아래에 있는 동료로서 함께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조택원은 1933년 독립해 첫 번째 개인 발표회를 가졌다. 그중 하나가 승무를 소재로 만든 창작춤 ‘승무의 인상 (1933)’이다. 이 춤 제목은 1943년 시인 정지용에 의해 ‘가사호접’으로 바뀌었다. 전통적 고깔과 장삼을 입고 춤을 추되 국악기가 아닌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를 반주로 하는 ‘가사호접’의 춤과 제목은 조택원을 대표하는 상징작이 됐다.같은 해 개인 발표회를 연 최승희도 한국적 창작춤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여기서 공연한 ‘에헤라 노아라’라는 한량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최승희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최승희를 대표하는 작품은 맨몸에 보석을 휘감은 채 손으로만 표현하는 ‘보살춤 (1937)’이다. 둘 다 불교적 소재로 자신의 대표작을 만든 것이 공통점이다. 훗날 조택원이 미국에 체류하고 있을 때 그를 후원해준 미국의 신무용가 루스 세인트 데니스 역시 ‘보살춤’과 아주 흡사한 ‘콴인’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해외에서 더 유명했던 조선 무용가최승희가 미국의 흥행사 휴록의 기획으로 세계 공연을 떠났을 때, 조택원은 국내에서 개인 공연을 위해 같이 춤을 출 여자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최승희는 대부분 혼자서 춤을 췄지만 여자치고는 기골이 장대해서 남녀듀엣이 필요한 경우, 최승희가 남자역을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남자 무용수가 필요없었다. 남자인 조택원의 경우는 달랐다. 그때 생각해 낸 것이 최승희의 제자 김민자였다. 그녀는 조선에서 처음으로 토슈즈를 신을 줄 알았던 실력 있는 무용수였지만 최승희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최승희가 해외 장기 공연을 떠나버려 기약없이 몇 년간 스승의 집안일만 돌봐야 했던 차에 조택원의 러브콜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 이상이었을 것. 김민자는 선뜻 요청을 수락했고 해외에서 이 사실을 들은 최승희는 불같이 화를 내며 국제전화를 걸어 조택원과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자기 허락도 없이 외간남자(?)와 춤 파트너가 된것도 모자라 단독 공연까지 감행한 제자의 당돌한 행위는 당시의 정서로는 용납이 안 되는 배신행위나 다름없었다. 이 일로 김민자는 근신조치를 받게 됐고, 결혼을 핑계로 스승의 곁을 떠났다. 소유욕과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최승희가 자기의 제자를 데려간 조택원을 좋게 보았을 리는 없었겠다는 추측이다.조택원은 1937년 프랑스로 건너가 공연을 시도했다. 해방 직후엔 미국에 머무르면서 현대 무용사의 거장 루스 세인트 데니스의 후원 아래 미국 순회공연을 했다. 조선춤으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각각 500여회가 넘는 공연을 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예술적 감각은 물론 조선의 춤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 것이었는지 새삼 일깨워준다.뛰어난 외모를 겸비한 이들은 영화에도 출연했다. 최승희는 자전적 영화 ‘반도의 무희’와 ‘대금강산보’에 출연하고 ‘이태리 정원’ 앨범을 취입했는데, 지금은 음반밖에 남지 않았다. 조택원은 영화 ‘미몽:죽음의 자장가(1936)’에서 바람난 유부녀 애순(문예봉)이 사모하는 무용가로 출연했다. 이 필름은 현존 조선의 유성영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문화재에 등재됐다. 시중에서도 구할 수 있어 젊은 조택원의 춤과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국경을 초월해 그들을 아끼는 유명 후원인들도 있었다. 최승희에게는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테일러나 피카소 등이 있었고, 조택원에게는 펄벅 여사가 있었다.◆ 해방 직후 남과 북으로 갈린 운명이들의 운명은 해방 이후 희비가 엇갈렸다. 문화말살정책 속에서도 당당히 ‘코리안’을 표기하며 조선춤만으로 활동했던 최승희는 막바지에 일본군을 위한 위문공연을 했다는 비난으로 남한에서 버티지 못한 채 해방 직후 남편 안막을 따라 월북했다. 조택원은 위문공연을 피해 미국으로 갔지만 친일색이 짙은 무용시 ‘부여회상곡(1942)’을 올렸다는 이유와 미국에서 이승만 정권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정부 수립 이후에도 한동안 귀국하지 못하는 풍운을 겪었다. 사랑 없는 결혼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결혼과 이혼을 거듭했던 ‘모던보이’ 조택원은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반면 ‘신여성’ 최승희는 가족에게만큼은 ‘여필종부’였다. 결국 한 사람은 남에서, 한 사람은 북에서 조선의 춤을 발전시키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월북한 최승희는 김일성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탄탄대로를 달렸다. 지금의 옥류관을 무용연구소로 하사받았고, 총천연색 춤 영화 제작까지 지원받았다. 조택원은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입국금지를 받아 오랜 방랑 끝에 1960년 13년의 타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이듬해부터 그는 한국 무용협회 고문이 되며 문화훈장을 받는 등 일생 동안 한국춤 발전을 위해 활동했다. 최승희는 많은 후원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사회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며 험난한 길을 자처했다. 주체사상이 도입되면서부터 남편이 먼저 숙청되고 자신의 모든 관직도 박탈당했다. 심지어 딸 안성희가 대중 앞에서 자신을 공개 비판하는 등 걷잡을 수 없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안정적인 말년을 살았던 조택원은 후세 사람들에게 최승희만큼의 강렬함은 남기지 못했다. 그의 뒤를 이을 제자를 키우거나 자신의 춤을 계승할 이론을 많이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승희의 매니저를 자처한 남편은 그녀를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포장해 스타마케팅에 성공했다. 조택원은 그럴만한 매니저를 두지 못했지만, 세련된 매너와 사교성으로 독자적인 외교를 펼쳐나가 문화예술계는 물론 일본의 정·관계 인사들까지 인맥을 형성해 대한민국 외교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결국 최승희는 1967년께 반동으로 몰려 숙청당해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조택원은 예술인들의 애도 속에 1976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남과 북으로 상징될 수 있는 조택원과 최승희의 일생은 한국 근대사의 슬픈 단면이기도 하다. [무용평론가 이 동우] --> 한국경제 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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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8
  • 군산의 마지막 권번 출신 기생(妓生) 김난주 할머니
    "기생질 허고 싶어 시집서 두 번 도망쳤지" [인터뷰] 군산의 마지막 권번 출신 기생(妓生) 김난주 할머니동네 회갑연에 초대되어 헌수를 도와주는 김난주(좌) 45세 때 모습. 윤기 흐르는 머리가 시선을 끈다.(1971년) 칼바람이 볼을 때리던 지난 2011년 12월 15일. 군산의 마지막 권번(가무를 가르쳐 기생을 양성하는 곳) 출신 기생(妓生) 김난주(85) 할머니를 찾았다. 60년 가까이 이웃으로 살아온 김 할머니 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 끝 집이었다. 좁고 짧았지만, 6~7가구가 오무래 오무래 살던 골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떠나고 김 할머니네 한 집만 남아 고요가 흐르는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금방 갈아놓은 먹물처럼 번들번들하던 기와지붕이 세월의 풍상에 시달리다 깨지고 탈색되어 마음을 짠하게 했다. 대문을 여는 순간 옛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생'을 천시하던 시절 김 할머니 댁은 동네에서 조카 이름을 딴 '정선이 고모네 집'으로 통했다.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는 어른들은 '난주네 집'이라 불렀으며, 아이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금단의 구역으로 '기생네 집'이라고도 했다. 누가 들을까 봐 쉬쉬하면서. "안녕하셨어요?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아~니, 이게 누구랑가···. 그랴 맞어, 나는 누군가 했제.(웃음) 추운 날 어쩐 일이당가. 어여 안으로 들어와. 우리 집을 다 찾아오고, 참말로 별일이네!" 꼬부랑 할머니가 된 김 할머니는 처음엔 "누구랑가?"하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3초도 지나지 않아 알아보고는 반가워하며 안방으로 잡아끌었다. 김 할머니는 예상대로 홀로 외롭게 살고 있었다. 옛날에는 친정어머니와 장애인 남동생, 조카 둘, 해서 다섯 식구였다. "그전에는 마당에 장독대랑 샘이랑 있었는데 모두 사라졌네요." "그~라제 조카사위가 고쳐줬어. 그나저나 웬 날이 이렇게 추워, 다리 밑에 거지들 모다 안 얼어 죽었는지 모르겠네. 그쪽은 차니께 이리~이리 아랫목으로 내려오라고. 커피 타줄까? 여그 귤도 하나 먹어보고. 참, 점심은 먹었능가?"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목소리 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해학과 풍자가 깔려있고, 끌리듯 당기듯 튕기듯 하면서도 애틋함이 묻어났다. 약간의 수다스러움은 판소리 춘향가에서 월매가 야밤에 찾아온 이몽룡을 반기는 대목을 떠오르게 했다. 평생을 소리(唱)와 함께 살아왔으니 그 여운이 어찌 남아있지 않으랴. "가시네 때 '바람피던' 생각만 나고 못 살겠드라고" ▲ 일본어 교육을 받는 일제강점기 권번 기생들.(김중규의 <군산역사 이야기> 스캔) 김난주(金蘭珠)는 본명으로 1927년 전북 순창 산골에서 태어났다. 예능에 기질을 타고난 그는 어려서부터 기생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스무 살까지 '바람'을 피웠단다. 이곳저곳으로 가무를 배우러 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강권으로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 "남원의 안(安)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는디, 남편은 집에서 글이나 읽는 학자였어. 그리도 어떻게 혀. 그럭저럭 살다 보니께 애기를 하나 낳았는디 어렸을 때 죽어 버렸어. 가시네 때 바람피던(가무 배우던) 생각만 나고 못 살겠드라고. 기생질 허고 싶어서 도망쳤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스스로 생과부를 택한 김난주는 스물두 살 되던 해 군산으로 이사한다. 변두리에 방 두 개를 얻어 친정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곧바로 소화권번에 입소하여 이기권, 김준섭 등에게 판소리와 장구를 배웠다. 그때 만난 장금도(84, 민살풀이 전승자)와는 60년 넘게 친구로 지내오고 있다. ▲김난주 20대 모습. 우리 소리가 좋아서 기생이 되려고 했다고. 김난주는 동료들에게 '타고났다!'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구음(口音) 구사를 잘했다. 춤을 추거나 악기를 배울 때 입으로 "나니나~ 나~나니~ 나리룻···" 하며 장단을 맞추다가 그 자체가 음악이 된 구음은 춤판이나 잔치판 등의 흥을 돋워주는 최고의 반주가 되었다. 스물네 살부터는 명월관, 근화각, 동해루, 쌍성루 등 큰 요릿집은 물론, 잔칫집으로 '밤 마실'을 나가기도 했다. 권번의 원칙은 4년을 마치고 시험을 거쳐 허가증을 받아야 하지만 워낙 목(소리)이 좋고 장구 솜씨가 뛰어나 권번에서 눈감아주었다. 김난주 인기는 대단했다. 집에서 곱게 화장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권번소속 예기 양성소에서 보낸 인력거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명월관 방마다 영화배우 닮은 김난주를 찾는 손님이 넘쳐났고, 마루에서 '뽀이'(boy)들이 서로 당기는 바람에 저고리가 찢어지기도 했다. "팁은 한 시간에 기본 2원이었제.(당시 쌀 한가마니 값이 6원) 그러나 두 시간 놀고도 50시간 100시간으로 달아주는 고마운 손님도 있었어. 이런 얘기는 쪼까 거시기 헌디, 손님이 연애를 걸어오기도 혔는디, 마음에 들믄 잠자리를 하기도 했제. (웃음) 하룻밤 사랑이 10년, 30년,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었응께. 그란디 지금은 다 흘러간 꿈이 돼야 뿌렀어!" 다섯 식구 '가장'으로 살아온 인생... 상갓집에서 초대 받기도 ▲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시기인 20대 후반 김난주의 모습. 김난주는 동네에서도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당시 인기 영화배우였던 이경희와 빼닮은 미인으로 알려졌었기 때문. 동료 기생들은 물론 요릿집 손님들은 영화배우 이경희 언니가 행차했다고 반기며 서로 옆에 앉히려고 다툼이 일기도 했다. 20대에 가장이 된 김난주는 열심히 노력했다. 인기 '짱'이었던 그는 1년 남짓 모은 돈으로 'ㄱ'자 기와집도 장만하고. 몸이 불편한 남동생도 장가를 들였다. 친정어머니 수발도 극진히 했다. 조카를 둘이나 보면서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였다. 올케가 남편(동생)과 젖먹이 딸 둘을 놔두고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친정어머니가 있다고 하지만, 직장과 집, 양쪽으로 시달려야 했다. 올케가 없는 빈자리를 메워 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조카들 엄마 노릇을 하면서 애처롭게 살아왔다. 그래도 결혼해서 50대 중반이 된 조카들이 엄마처럼 대한단다. ▲ 충청도 광천 부잣집 환갑잔치 마당에서 장구로 흥을 돋우는 김난주.(1973년) 1960~1980년대 김난주는 주로 환갑이나 잔칫집에서 초청을 받고 외출을 나갔다. 동료 기생 2~3명이 함께 가서 자식들이 차례로 부모에게 술잔을 올릴 때 옆에서 도와주며 유창한 선율로 "받으시오, 받으시오, 이 술~ 한~잔을 받으시오"로 시작하는 권주가를 불렀다. 부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헌수(獻壽)가 끝나면 차일이 쳐진 마당에서 놀이판이 한바탕 벌어졌다. 놀이판에서는 장구, 북, 창, 구음 등으로 분위기를 잡아주었고, 손님들과 환갑을 맞은 본인이 소반에 팁을 놓아주며 흥을 돋우었다. 군산뿐 아니라 김제, 부안, 전주, 이리(익산), 충청도 등지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1박을 해야 하는 충남 대천이나 광천, 부여 등에는 친구이자 민살풀이 일인자인 장금도와 함께 다녔는데, 군산에서 왔다는 기생들을 보려고 몰려든 구경꾼이 잔칫집 마당을 가득 메웠다. 상가(喪家)에서 초대를 받기도 했다. 일반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내지만, 망자가 생전에 벼슬을 했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출상하는 날 기생을 불렀다. 애절한 소리로 저승으로 향하는 망자의 친구도 되어주고 길잡이도 돼주기 때문이었다. 기생이 요령잡이를 한다는 소문이 초상마당에 돌면 서로 상두꾼을 하려고 모여들었다. 머리에 흰 끈을 질끈 동여맨 기생이 상여에 올라 요령을 흔들면서 청아한 목소리로 만가를 선창하며 이끄는 꽃상여는 그 자체로 대단한 볼거리였으며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 옛날 나비들도 모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어!" ▲ 1960년대 중반 여름 피서지에서 동료들과 함께. 맨 앞이 장금도. 세월의 변화는 물의 흐름과 같아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법. 40대 후반부터는 외출(잔칫집 행사)이 잦아졌다. 미제 깡통문화에 길들여진 한량들로 세대교체 되면서 우리의 전통 창(唱)에서 벗어나 신식가요를 즐기는 손님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구음 구사가 뛰어나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악기 다루는 솜씨가 능숙해지고 창법도 원숙해지면서 50~60대에는 학원을 개설해서 후배를 가르치기도 하고, 선후배 기생들과 모임을 만들어 내장산, 속리산 등으로 야유회를 다니며 덧없는 세월에 허전해진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호호백발이 된 김난주 할머니가 기억하는 기생 동료는 민살풀이 일인자 장금도를 비롯해서 금선이, 옥주, 채선이, 혜영이, 난영이, 도심이 등. 그러나 대부분 죽거나 타지로 나가 살고, 장금도만 군산에 살면서 전화로 소식도 전하고 사는 얘기도 나눈단다. 권번에 발을 늦게 들여놓아 기생 경력이 짧지만, 애틋한 사랑을 주고받았던 남자도 몇 된다고 털어놓는 김난주 할머니. 그러나 "지금은 시든 꽃이 돼 뿌렸고, 그 옛날 날아들던 나비들도 모두 저 세상 사람 되었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오마이뉴스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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